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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의 종착역은 막걸리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음식과 함께 술을 즐기다가 중독이 되면 점점 더 많은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를 적게 먹게 된다. 그러다 결국에 술만을 원하는 술꾼이 되면 그때 딱 좋은 술이 막걸리다. 포만감도 있고 가격도 저렴한데다 맥주보다는 도수가 높은데 맛은 또 달아 별다른 안주 없이도 마시기 편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십대초반 막걸리를 마시고 된통 체한 뒤로는 입에도 대지 않는 술이었지만 언제부턴가 거의 막걸리만을 마시게 되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는 젊었을 때 자주 퇴근길 양조장에 들러 왕소금 몇 알에 막걸리 두사발을 들이키셨다는데
나는 왕소금 대신 주로 굽지 않은 김이나 드레싱을 얹지 않은 생야채, 소금으로만 간을 한 고기를 주로 먹으니 호사를 누리는 셈이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막걸리를 대접에 따라 들이키면 다른 술처럼 식도에서만 느껴지는게 아니라 위장까지 막걸리가 묵직하게 퍼지는게 느껴진다. 말 그대로 위장에 밥이 간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곧이어 두번째 대접을 빠르게 비우면 배고픔이 사라지고 식욕이 돋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 술이 아닌 음식을 많이 먹으면 그뒤로 빠르게 술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김 한장, 혹은 방울토마토 한 알, 얇은 고기 한 점을 입으로 밀어넣는다.
안주를 음미하며 세 번 째 잔을 따른다. 지금부터는 조금 천천히 즐길 시간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볼 영상을 고르며 한모금씩 홀짝 거리다 보면 어느새 취기가 달아오른다. 기분이 느슨해진채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잔을 들고 내린다. 한 접시도 채 되지 않는 안주는 마지막 잔에 맞춰 아껴먹는다. 어느새 술배가 불러오고 조금씩 졸리기 시작한다.
막걸리 두병, 혹 막걸리 두 병으로도 모자란 날에는 입가심으로 맥주 한 캔을 더 마시고 자리를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를 피운뒤에 비틀거리며 걸어가 잠자리에 눕는다. 어둠속에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눈을 감는다. 잠에 빠져든다.
두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혹 전화가 걸려왔더라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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