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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과 말
    절주일기 2021. 8. 9. 17:43

    평론가 신형철은 "말하기보다 글쓰기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말을 쉽게 해왔다는 뜻일 수 있다."라고 썼다.

    물론 나 역시 말하기보다 글쓰기를 훨씬 더 어려워한다. 그만큼 말을 쉽게 해왔던 게 사실이고 술에 취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평소보다 더 대화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지만 술에 취하면 본질적으로 결국 내가 말할 기회만 엿보며 들어주는 척을 하게 된다.

    그러다 기회를 잡는 순간 말들을 쏟아내게 된다. 오직 말꼬리를 잡고 이어나가기 위한 말들이다. 평소 하던 생각마저 정정하면서 말을 하면 할수록 내면 어딘가 까만 구멍이 생기는게 느껴지지만 애써 무시한다. 내용이나 상대방의 반응조차 중요치 않고 오직 '말하는 나' 의 모습에 도취되어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몇 번이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술에 취해 말하는 부끄러움을 잊은 것이다.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흥분해 꼬리 대신 혀를 쉴 새 없이 흔드는 것이다.

    그렇게 떠들어 대고 난 뒤, 집에 가는 길 마침내 혼자가 되어 침묵속에 지난 시간을 되짚어볼 때면 늘 입안이 쓰렸다. 까만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탓이었을까.

    나는 너무나 쉽게 살아가는 것 같아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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