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지난 이십년 가까이 나는 두가지에 진심이었다.
첫번째는 글쓰기. 아무도 읽지 않을 수천장에 이르는 글들을 썼고 그 과정속에 아무도 읽지 않는 책 한권을 냈다. 물론 그 결과가 죽도록 시시했고 진지했던 태도와는 별개로 게으름이 심했다는 후회가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문학이 삶을 바꿀수 있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었었다.
다른 하나는 음주였다. 기쁘면 기뻐서, 슬프면 슬프다고, 사람들과 만났으니까, 혼자일때는 또 혼자이니 마셨다. 세상에 넘쳐나는게 술꾼이라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나만큼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오래 자주 마셔댔다. 술을 마시며 스치게되는 강렬한 감정과 다음번 술자리의 농담이 될 사건사고들이 즐거웠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취기에 곯아떨어져 잠이 드는 달콤한 순간을 나는 사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스로 생각해도 좀 너무 멀리갔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지난 오년간 단 하루도 빠지않고 마시고 있다. 숙취에 종일 일도 제대로 못하고 술이 마시고 싶어 해야할 일을 미루는 날들이 늘어났다. 이제 더는 음악도 잘 듣지않고,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하고 싶은 일도 흥미로운 일들도 사라졌다. 모든 것에 입맛을 잃은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하루를 끝마치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는 삶을 살고 있다. 오년 동안 글은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잖아? 라고 묻는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새롭게 두 가지를 진심으로 시작하려 한다.
첫번째는 금주. 그리고 두번째는 금주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 아니, 어쩌면 금주를 하며 좋아하는 술이야기나 실컷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글이 쓸데없이 비장하건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쓰는 탓일까 아니면 금주라는 게 원래 이토록 심각한 일이기 때문일까?